작자: 황진이(黃眞伊)는 조선시대 명기(名妓)로 본명은 진(眞), 기명(妓名)은 명월(明月)이다.
개성 출신으로 조선 중종 때 태어났다. 정확한 생존연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녀가 1520년대에 나서 1560년대쯤에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 황진이와 사귄 사람들의 일화로부터 추측해 낼 수 있다.김택영의 「소호당집(韶濩堂集)」을 보면 황진이가 기녀가 된 일화를 보여주는데 옆집에 한 서생(書生)이 황진이의 미모에 매혹되어 상사병을 앓았다. 그러다가 병이 깊어 죽었는데, 장례식날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황진이가 자신의 치마 저고리를 관에 덮어주니 그제서야 관이 움직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황진이는 기녀가 되었다. 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 중의 하나이며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다.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제목: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 구비 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