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Saens, Charles Camille (1835~1921): 프랑스

생상은 19-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사람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12세 때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과에 입학하였으며 16세 때에는 제1교향곡을 발표하였다. 17세 때, 성 마리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하였으며 21세 때의 제2교향곡은 성 세실리아 협회의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26세 때부터 4년간 니데르메이르 종교 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있으면서 포레, 메사제, 지구와 같은 유능한 제자를 육성하기도 했다. 1879년에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발표했으며 그 후 그는 19여편의 오페라와 8편의 극음악을 작곡하였다. 한편 그는 국민음악협회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새로운 음악 진흥에 전력하였으며 젊은 세대의 작곡가들을 많이 세상에 소개하였다. 그는 이때 기악곡을 많이 작곡하였는데 지금 널리 알려진 곡은 [파에톤][죽음의 무도][헤라클레스의 청년 시절] 피아노 협주곡 제4,5번, 바이올린 협주곡 제2,3번 등 그 밖에도 실내악곡들을 많이 썼다. 바야흐로 그의 명성은 자자했으며 그는 자작의 피아노 협주곡을 가지고 독일,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순방하였다. 1906년에는 아메리카를, 1916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여 파나마 태평양 박람회에 참석했으며 남미 등지도 방문했다. 86세 때 알제리를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애석하게도 객사하였다. 그의 조국은 그의 공로를 참작하여 파리에서 국장으로 장래를 치루었다. 그는 독일의 고전과 낭만파를 잘 이해하였으며 풍부한 음악성으로 밝고 아름다운 구성미를 이루는데 크게 성공하였다. 생상의 음악 기법에 있어서는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의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고전주의적인 우아한 균형과 세련미가 있다. 로망롤랑은 말하기를 "생상의 예술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며, 정밀하고 간소하게 표현되어 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바꿈, 넘쳐 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어디까지나 글루크, 모짜르트 등의 고전의 기초 위에 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면과 함께 그의 보수적인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프랑스의 새로운 국민 음악의 창조는 선구자로서의 프랑크, 생상을 거쳐 인상주의적 세대의 등장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는 작품 번호 169를 헤아리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